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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생활][브랜드스토리]Since 1899, 후지바이크
작성자 : 관리자등록일 : 2017-01-09 조회수 :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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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스토리]Since 1899, 후지바이크 118년간 쌓아올린 것은 전문기술에 대한 집중력

118년간 쌓아올린 것은 전문기술에 대한 집중력

120년에 달하는 역사를 가진 아시아 최초의 자전거 브랜드 후지. 그 초창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은 어땠을까? 
1899년 일본에서 처음 설립된 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승승장구하던 시기에서부터 위기극복 과정을 걸쳐 현재로 이르기까지. 후지의 1세기 역사를 소개한다.

후지바이크는 국내에 유통된 지 벌써 10년 이상 된 브랜드다. 이렇게 말하면 그다지 내세울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국내 유통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예민한 한국 자전거 시장에서 버텨온 것은, 후지의 신뢰도와 선호도의 꾸준한 성장이 뒷받침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 10년간 치열했던 한국 시장의 호황기부터, 전에 없던 침체기라고 평가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후지를 지탱해 온 것은 바로 120년간 쌓아올린 전문기술에 대한 집중이었다.

후지의 로고타입과 헤드튜브 엠블럼의 변화


니치베이 후지의 태동과 일본시장 석권
후지의 역사는 18세기 말, 1899년부터 시작한다. 창업주인 ‘치사토 모리야‘는 후지산의 기개를 담아, ’니치베이 후지‘라는 이름으로 자전거업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자전거 부품을 일본내에 공급하기 위한 수입사의 역할이었던 것이, 빠르게 성장해 불과 2년만에 완성차를 만들어 자국내에 유통하기에 이르렀던 것. 이때부터 후지바이크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직접 자전거를 생산하게 된 후지는 일본 최초의 자전거 업체로서 유럽과 미주 수입품 일색이었던 시장에 당당히 자국 브랜드로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경기가 갓 태동하던 시기였고, 그런 시류를 따라 일본에서도 자전거가 크게 유행해, 곳곳에서 자전거 대회가 열렸다. 그런 크고 작은 대회들에서 후지의 자전거는 항상 좋은 성적을 내 주었고, 대회의 영향력을 실감한 후지는 1920년대 이르러 처음으로 일본의 전국구 레이스인 ‘투르 드 재팬’을 열고, 그 우승팀을 후원하며 후지바이크의 효과적인 마케팅을 진행함과 동시에 일본 내 자전거 보급에도 힘쓰게 된다.

초창기 후지의 자전거


아시아를 발판으로 세계로
후지바이크가 본격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제1회 아시안게임에서의 우승이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있다.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에서 ‘쇼이치로 스기하라‘박사의 우승으로 그 이름이 아시아 전역에 퍼지게 된 것. 그것으로 인해 후지바이크는 아시아 시장에 수출의 발판을 딛게 되었다. 이후 후지는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의 대표 자전거 메이커로서 입지를 당당히 굳히게 된다.

미국 여성 국가대표팀을 후원하게 된 후지


세계무대에 데뷔, ‘후지 아메리카’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며 승승장구 하던 후지는 이내 전세계로 눈길을 돌리게 된다. 1971년 미국 본토에 ‘후지 아메리카’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세계시장 공략에 나서는데, 당시 일본은 호황기를 맞아 섬유와 전자기기, 자동차 등 공산품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이르렀던 상황으로 전세계에서 일본산 제품들에 주목을 하던 시기였다. 이런 순풍에 잘 올라탄 까닭일까, 후지바이크는 자전거 열풍이 불던 미국에서도 모든 면에서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인정받으며, 세계시장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세계시장에서 후지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는 단순히 판매량의 증가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다. 판매량의 증가와 인기란 항시 그 제품의 성능에 비례하는 법. 후지바이크는 미국시장 진출 10년만에 미국 여성 국가대표팀의 자전거를 후원해 그 성능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성’이라는 타이틀에 있다. 후지는 항상 다양한 라이더를 고려한 자전거를 제작했는데, 미국 여성 국가대표팀이 선택한 배경에는 그 사이즈의 다양함과 그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뒷받침 되었던 것. 현재까지도 하나의 라인업에서 다양한 사이즈를 선보이는 배려를 볼 때, 당시 후지바이크가 여성 라이더들에게는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음이 틀림없다. 또한 다양한 사이즈 분포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능을 내 주는 것 역시 오늘날까지 후지바이크만의 큰 매력 포인트다.

 

풋온 서베토 팀(위)과 제옥스(아래) 팀의 경기 모습. 제옥스 팀은 후지의 알타미라를 타고 2011년 부엘타 아 에스파냐의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생산라인의 변화
후지바이크는 꼭 일본과 미국 내 생산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들어, 높아진 인건비와 유통단가 등을 고려해 생활차 등 하급자전거의 생산을 당시 성장이 한창이었던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로 옮긴 것. 이렇게 타국에서의 생산을 그리 달갑게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만연한 국내 시장이지만, 중요하게 짚어야 할 것은 이런 분리에 따라 본사는 고급 레이싱용 자전거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 및 생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해당 시기는 자전거에 쓰이는 신소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시기였던 만큼, 후지바이크는 좀 더 면밀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후지바이크의 프레임 테스트 모습


후지바이크, 미국으로의 귀화
하지만 후지에게 정작 중요한 위기는 80~90년대 MTB의 등장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산악자전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진 후지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또한 그런 시대의 흐름 뿐만 아니라, 대만과 중국 등지에서 자전거 제조업체들이 난립하며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는데, 여전히 일본에서의 생산라인을 갖고 있던 후지는 높아진 생산단가와 인건비까지 맞물려, 도산위기까지 맞게 된것. 하지만 ASI의 등장으로 후지는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오로지 후지바이크를 인수하기 위해 설립된 이 회사는, 후지를 새로운 트렌드와 소재에 적응하기 쉽게 다듬어 내는 한편, 제조사였던 대만의 아이디얼에 투자까지 감행하는 등 현재의 후지바이크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 된다. 이로써 후지바이크는 엄연한 미국 브랜드로 발돋움 하게 되었다.

이후의 후지바이크는 신소재인 카본을 적극 활용하고, 약세였던 MTB 라인까지 보강하며, 많은 그랜드 레이스에서 우승하는 등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후지 111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니치베이 SST’모델. 카본프레임임에도 불구하고 은빛의 데칼이 인상적이다


지금의 후지를 있게한 힘
후지바이크는 전세계에 퍼져 있고, 그 라인업은 생활차부터 투어링까지 장르를 불문한다. 이런 다양한 라인업을 유지하는 브랜드는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는데, 후지바이크는 그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본사의 규모는 상당히 조그마한 편이라고. 
후지의 국내 공급사인 신기바이크의 라윤환 상무는 “후지는 거대기업이 아니다. 후지는 오로지 전문화되고, 고도화 된 자전거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브랜드다.”고 말하며 후지의 전문화된 기술력을 강조했다. 후지는 특히나 최근 몇 년간의 트렌드인 에어로다이내믹에 기술력을 집중해왔으며, 그 성과는 주로 철인3종 경기에서 부각되었다. 상대적으로 다양한 코스가 펼쳐지는 로드레이스 보다는 철인경기나 트랙경기에서 공기역학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트랜소닉과 같은 에어로 로드바이크의 출시도 이루어 지는 등 로드시장에서도 그 연구의 성과는 톡톡히 확인이 가능하다. 경량의 로드바이크인 SL조차도 풍동실험을 진행해 제작하는 만큼, 그 연구열만큼은 높이 살 만하다.
이런 소개를 해놓고 나니 연구는 상위기종에만 집중되는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그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하위기종과 생활차 라인업까지 그 기술력이 스며들 수 있는 기술의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
  
신기그룹에서의 후지

사실상 후지는 많은 이들이 훌륭한 자전거 브랜드라고 인식하고는 있지만, 최종 선택에 있어서 확실한 매력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지만, 과거에 있었던 사고와 당시 수입사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후지바이크가 몇 년간 홍역을 치러야만 했던 일을 들을 수 있다. 그 이후로 후지바이크는 새로운 수입사를 찾게 되었고, 철저한 AS 정신으로 무장된 신기그룹에서의 후지는 과거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국내 유저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신기그룹의 라윤환 상무는 “처음 후지를 취급할 때 역시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손상된 브랜드 이미지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우리 신기그룹은 다른 사업부문에서도 그렇듯이 기본적으로 철저한 AS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고, 그것이 확실히 브랜드 이미지의 쇄신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고 말하며 후지바이크의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의견을 내비쳤다.
  
2016년, 국내 자전거 시장은 유래없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라에 재난 급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2017년의 자전거 시장조차도 그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1,2년의 어려움은 120년의 명맥을 이어온 후지바이크라면, 그 신뢰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어렵지 않게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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